이카루스

COMMUNITY/LOG2026. 1. 7. 00:25


얀, 야나, 나의 별.

시작에 앞서, 무엇으로 너를 불러야 할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너를 지칭할 이름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나는 결국 네 진짜 이름을 택한다.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사람의 전부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니까. 그 끝이 파멸이든, 세상의 저편이든 상관없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서.

내가 울었기 때문에 네가 서 있어야 했고, 내가 흔들렸기 때문에 네가 버텨야 했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나는 끝내 너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잘못이었는지, 마지막이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야나, 너는 나를 아직 아이라고 했다. 다만 외로울 뿐이라고. 그래, 부정하지 않을게. 나는 늘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도 혼자였고, 혼자이면서도 누군가를 필요로 했으니까. 하지만 얀, 외로움이 모든 감정을 가짜로 만들지는 않아. 외로움 속에서도 사람은 선택을 하고, 나는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너를 선택했으니까.


네가 아니어도 되었을 거라고 말했지.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너는 알고 있었을까. 그 자리에 누구든 올 수 있었다는 말은, 네가 내 삶에 남긴 모든 흔적을 우연으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우연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너에 대해서만은.

나는 너를 별이라고 불렀다. 빛나고, 뜨겁고, 가까이하면 타버릴 별. 하지만 얀, 나는 이미 불 속에서 살아온 사람인 걸 너도 알고 있을까. 불을 싫어하냐고? 나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천을 덧대고, 상처를 가리고, 타버린 자리 위에 다시 손을 얹는 법을 배웠다. 너는 내가 불타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너 때문에 불타는 게 아니야. 너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불에 그을린 사람이었으니까.

그래, 이카루스. 네 말을 듣고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가 태양을 향해 날아오른 것이 욕망이었는지, 자유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선택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그는 떨어질 걸 알면서도 날았다는 사실이겠지.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다고 부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날지 않는 선택도 할 수 있었고,

그는 그럼에도 날았다.

나는 네게 날아가고 싶다. 설령 내 몸이 불타오른다 해도, 내가 나를 소멸시킨다 해도. 재가 되어서라도 너를 찾아갈 수 있다면.

약속은 휘발된다고 했지. 어린 날의 새끼손가락 걸기는 놀이였다고. 아마 네 말이 맞을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약속은 그렇게 사라진다. 하지만 얀, 나는 약속을 쉽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무게를 알기 때문에 함부로 내뱉지 않아.. 그래서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내 안에서 오래 남아 썩어가지. 나는 네가 그 약속을 가볍게 여겼다는 사실보다, 그 약속이 나에게만 무거웠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다.

나는 네 약속을 중심으로 서 있었으니까.

열쇠를 돌려주겠다고 했을 때, 나는 네가 나를 놓아주려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네가 스스로를 놓아주려 한다고 느꼈다. 나를 위해서라는 말 뒤에 숨어, 네가 짊어진 죄책감을 내려놓으려 한다는 걸. 그게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식이라고는, 끝내 말하지 못하겠네.

상처 주고 싶지 않다는 말은 나를 보호하는 말이 아니라, 나를 선택에서 배제하는 말이었다. 너는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겠지만, 그 말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네가 없는 미래를 상상해야 하는 사람이 내가 되었다는 걸.


너를 지우면 끝난다고 했지.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비망록에서 지우고, 기억에서 밀어내고,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숨이 덜 막히겠지. 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기억들은 지워지는 대신 형태를 바꿔 살아남는다는 걸. 밤에, 꿈에서, 손에 남은 감각으로. 너는 이미 그런 기억이고, 그렇게 될 거라는 걸 나는 안다. 나는 그런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법만 배운 사람이니까.


그래서 솔직해질게. 나는 현명하지 못해.. 여전히 이기적이고, 아직도 어리지. 나는 네가 내 곁에 있기를 바랐고, 지금도 바라. 네가 떠나지 않기를, 멀어지지 않기를, 세상 저편으로 가더라도 내가 따라갈 수 있기를. 그게 욕망이라는 걸, 너는 이미 알고 있겠지.


그렇지만 얀, 내 수렁에 빠지기로 한 너를 나는 놓을 수 없는 거, 알아?  네가 내 수렁에 빠졌다면, 나도 기꺼이 네 수렁에 빠지고 싶으니까.


이어진 생각에 나는 너를 품에 가두었다. 떨리는 손과 가쁜 숨이 느껴졌다. 너는 알고 있을까. 내 심장 또한 네 박동에 맞춰 뛰고 있다는 걸. 너를 안은 내 손 역시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너를 안고 있었다. 네 숨이 가빠지는 것도, 어깨가 젖어드는 것도 알면서 모른 척했다. 이 순간만큼은 시간도, 도덕도, 옳고 그름도 모두 무력해졌으니까. 제 손이 더러운 손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나는 천천히 네 등을 쓸어내렸다. 피와 거짓과 침묵으로 얼룩진 손. 범죄자의 숨을 가려주고, 들키지 않도록 옷의 실밥을 고쳐주던 손. 그 손으로 너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잔인하게 만들었다.

"괜찮아. 쉬어.—"

달래는 일에는 재능이 없었다. 항상 나는 네가 이미 울어버린 뒤에야, 이미 망가진 뒤에야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나는 너를 안았다. 네가 무서워하는 만큼 더 단단히, 네가 스스로를 혐오하는 만큼 더 오래. 이 재앙을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믿고 싶었으이까. 나만이 너를 감당할 수 있다는 오만, 나만이 너를 품을 수 있다는 착각.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알면서도 나는 반복했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알기에, 괜찮아질 때까지 곁에 있겠다는 뜻으로. 네 울음이 잦아들 때마다 내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고, 그 리듬이 네게 옮겨가길 바랐다.

"이 재앙도, 지옥도 내가 품을게. 무엇이든 할게. 그러니까 제발, 날 떠나지 마."

그 말은 기도이자 선언이었다. 이 지옥을 선택했다는 선언, 이 재앙을 품겠다는 고백. 네가 무너질 때마다 내가 함께 무너질 거라는 약속. 나는 더 이상 위를 보지 않았다. 태양은 이미 충분히 보았고, 충분히 타버렸으니까. 이제는 떨어지는 법을 배울 차례였다.

너와 함께라면, 추락조차 방향이 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러니 얀.

네가 다시 떨고, 다시 어둠을 부른다면— 나는 또다시 더러운 손으로 너를 안을게.
그 손이 죄로 물들어 있더라도, 그 품이 지옥의 입구라 하더라도.
너를 위한 일이라는 이름으로, 나는 다시 선택할 거니까.

날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도 나는 날아오를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니까.
이번에는, 네가 내 곁에 있으니까.

"도망치자, 같이… 어디든 좋으니까. 내가 다 책임질게. 그러니까, 야나…, 제발 나를 한 번만 믿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