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잎클로버

COMMUNITY/LOG2026. 1. 4. 22:20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당시 아카데미에는 수많은 입학생들이 있었고, 그 중 너도 한 명이었으니. 그때를 다시 회고해서, 네 첫인상을 회상해보자면. 먼저, 동전을 튕기는 습관이 눈에 들어왔다. 손끝에서 손등으로 튀어 오르던 금속의 소리. 바늘이 천을 가를 때와는 전혀 다른, 청명한 소리였으니까.

나는 그게 왜 그렇게 반복되는지 궁금해졌고, 그 정도가 전부였다. 동전이 떨어지는 각도, 튕길 때의 힘, 멈추는 순간. 그 정도가 궁금했다.  나는 너를 관찰하고 싶었다. 관찰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다가가지 않아도 되었고, 책임질 필요도 없었으니까. 간추려서, 정립하자면. 나는 너를  단순히 관찰하고 싶었다.

몇 번 말을 섞으면서 알게 된 건, 네가 재미있는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제게 세잎클로버의 의미가 어울리는 사람이라 말해준 것도, 행운 대신 행복을 찾게 된 것도 네 말에서 기인했으니까.

네 말의 방향이 예측되지 않았고, 웃음은 늘 너를 따라 내게로 도착했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나는 네가 나와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살아왔다는 걸 느꼈다. 너무 달라서, 오히려 닿고 싶어지는 종류의 사람. 그래서인지 함께 있는 시간은 이상하게도 가벼웠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네 생각만 하면 죄책감도, 피 냄새도 잠시 잊을 수 있을 만큼이니까.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젠가 네가 내 사람이 된다면, 도피처를 주고 싶다고. 세상에서 도망쳐도 되는 장소, 아무도 묻지 않는 공간. 그래, 나는 너를 내 사람으로 두고 싶었다. 그래서 네게 그 열쇠를 준 것이었으니까. 그 이유가 선의였는지, 욕심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너무 다른 사람이었기에, 내 세계 안으로 들여놓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창고에 대한 얘기를 다시 해볼까. 그 공간은 나의 도피처이자, 내 세월이 담긴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 너를 두고 싶었던 이유는, 그곳에 쓰인 추억에 너를 덧대어보고 싶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니, 그 시간의 흐름을 너와 함께 써보고 싶었다. 너와 함께 있으면 무언가 특별해진 듯한 기분이 들어서, 네게 내 세상의 일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는 소유욕에 가까웠다. 어린 아이가 제 소유인 것을 놓고 싶지 않아 징징거리던 것과 유사했다. 어린 날의 치기이자, 무지였다. 너무 다른 사람이었기에, 내 세계 안으로 들여놓고 싶다는 욕심. 내가 견뎌온 모든 것에서 벗어나,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존재를 내 손 안에 두고 싶었다.

그럼에도 나는 선을 지키려 애썼다. 가까워지되, 기대하지 않기. 정을 주되, 바라지 않기. 그렇게 수많은 감정들을 봉제하듯 꿰매며 지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바늘질은 상처를 가릴 수는 있어도, 없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다는 걸.

네가 내 책임을 덜어주겠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으려 애썼다. 그 말이 내게 파도처럼 밀려왔기에. 너는 내게로 밀려와서, 오래 쌓아두었던 것들을 무너뜨렸다. 내게 무거웠던 책임을, 네게 잠시 두고 싶었다. 그 책임을 다시 되찾을 핑계로 언제든지 네게 가고 싶었다. 달음질을 멈추고 서로의 곁에 있기로 약속했으니까. 우리는 같은 속도여야만 하니까.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다시는 빌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 자신에게서, 아주 작은 예외가 생겼다는 걸.

소원 하나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네가 내 곁에 계속 있었으면 한다고. 형태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도, 관계도, 약속도. 그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내 삶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부재를 상상하는 일이 두려워졌다.

이 감정이 애정인지, 집착인지, 혹은 결핍인지. 나는 아직도 확신하지 못한다. 다만 분명한 건, 이것이 내가 선택한 욕망이라는 사실이다. 외면하지 않기로 한, 몇 안 되는 감정.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만일 네가 내게서 멀어진다면, 그곳이 세상 저편이라 해도 나는 갈 거라고.

너는 내 곁에 있고, 나도 네 곁에 있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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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약속이든, 저주든 상관없어.

그건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허락한 희망이자, 다시 한번 세상과 맞서 보기로 한 이유였으니까.